정치개혁과 비례대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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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304회 작성일 19-08-06 11:56본문
정치개혁은 한국정치의 과제다. 그 중에서도 선거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국민의 선택을 있는 그대로 국회 의석수에 반영하는 선거제도의 도입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마중물이자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한국의 현행 소선거구제는 오랫동안 지역주의와 결합돼 이념·정책 정당의 과소대표와 지역·인물 정당의 과도대표 현상을 가져왔다. 소선거구제 하에서 지역할거주의와 그에 기초한 정당보스주의가 고착됐고,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치는 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선택보다는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선택에 따라 선거 결과가 좌우되어 왔다. 한국의 후진적 선거제도가 합의제 민주주의 발전의 기본 조건인 정당의 다양화를 방해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런 소선구제의 고질적 병폐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현행 선거제도를 각 정당이 얻은 표에 비례해서 의석수를 배분하는 방식, 즉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것이다.
현행 소선거구 일위대표제 중심의 선거제도를 전면 비례대표제로 개혁한다면 우선 이념 및 정책 정당들의 정치시장 진입이 쉬어질 것이다. 의석의 배분이 각 당의 득표율에 비례해서 이뤄지기 때문에 신생정당들은 적은 득표율로도 그에 비례하는 의석을 차지할 수 있게 된다. 더군다나 사표가 발생되지 않는 까닭에 유권자들은 전략적 투표를 할 필요 없이 자신의 정당 선호를 있는 그대로 나타낼 수 있다. 물론 비례대표제에서는 군소정당의 난립을 방지하기 위한 봉쇄조항이나 저지조항이 불가피하지만, 그럼에도 보편적 이성과 시대정신에 맞는 이념과 가치 그리고 국민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정책과 대안을 갖춘 정당이라면 신생정당도 얼마든지 국민의 지지를 얻어 의석을 차지할 수 있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에서는 투표가 통상 광역선거구나 전국구를 선거 단위로 해서 인물이 아닌 정당을 대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각 당이 내세우고 있는 이념이나 정책이 매우 중요한 선거변수가 된다. 이는 특정 지역이나 특정 인물이 아니라 보편적인 이념이나 정책에 기초한 신생 개혁정당들에게 보다 유리한 선거환경이 조성된다는 의미다. 물론 비례대표제가 신생 정당들의 원내 진입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비례대표제의 도입으로 선거 환경이 변하면 기존 정당들 역시 생존을 위해서라도 인물이나 지역이 아닌 이념이나 정책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비례대표제는 한국의 정당체계를 구조화된 다당제로 전환시키게 된다. 그리고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한 이 같은 정당의 구조화 작업은 양극화 심화 등으로 사회통합의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소하는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오늘날 합의제 민주주의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의 요체는 비례성의 확보이다. 세계적으로도 합의제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정당득표율과 의석점유율 간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다. 그리고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를 두고 있는 나라일수록 합의제 민주주의의 핵심 특성인 이념과 정책 중심의 다당제가 발전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4년 총선부터 부분적으로 1인 2표제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되고 이를 계기로 수십 년 동안 고착됐던 양당구조에 일부 균열이 생기고 다당제의 물꼬가 트이긴 했다.
하지만 한국의 현 정당구도는 아직도 이념·정책을 기준으로 구조화 되지 못하고 지역·인물 구도에 매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소선거구-비례대표 연동제인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는 소선거구에서의 당선 숫자와 무관하게 총 의석수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정해지고 다만 지역구에서 몇 명이 당선됐느냐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조정하는 선거제도다. 이 제도의 최대 장점은 사표 심리 때문에 유권자들이 거대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는 선거법 개정안이 패스트 트랙으로 올라가 있다. 위 국회 상정안은 완전한 의미의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아니지만 현행 제도보다 비례성을 강화했다는 점에서는 큰 의미가 있다. 이제 한국 정치도 바뀔 때다. 비례대표제의 도입과 안착을 기대한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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