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입법 마비…시행령 제동장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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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069회 작성일 19-11-05 10:48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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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입법 마비…시행령 제동장치도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19.11.04 05:00 수정 2019.11.04 08:47
“사상 최악 20대 국회에 책임을 지겠다.”
더불어민주당의 스타급 초선인 표창원 의원이 지난달 불출마를 선언하며 남긴 말이다. 모든 것에 부동의하는 여야도 ‘20대 국회가 최악’이라는 말엔 동의한다. 이는 법안 실적으로도 드러난다. 20대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는 지난달 31일까지 2만2656건으로 역대 최다지만 본회의에서 처리된 법안(내용 반영 포함)은 6232건에 불과해 법률 반영률이 27.5%에 불과했다. 이 비율은 16대(63%)국회부터 꾸준히 추락해 왔지만 19대(41.7%)에 비교해 20대 국회의 낙폭은 컸다.
이 같은 상황은 여권이 ‘시행령 정치’를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고 있다. 윤관석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취임 이후 주요 입법 논의가 올스톱된 상태”라며 “민생 차원에서 중요한 과제는 시행령으로라도 시급히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회의 입법 지체는 심각한 수준이다. 823일.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던 ‘소방관 국가직화’ 관련 6개 법안이 지난달 2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민주당 이재정 의원 안은 문 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2016년 7월 21일에 나왔지만 선거제와 검찰개혁과 관련한 패스트트랙 정국의 파행이 영향을 미치면서 상임위 논의가 안 됐기 때문이다. 그 사이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2017년 2월 21일), 밀양 세종병원 화재(2018년 1월 26일), 고성 산불(지난 4월 5일) 등 대형 화재가 계속됐지만 한국당 의원들은 “국가직이 아니면 불을 못 끄냐”(이진복 의원)고 했다.
지난 9월 23일 당정이 국토부 훈령을 개정해 도입하기로 한 복합쇼핑몰 개점 입지 규제는 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2017년 9월 대표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안에 담긴 내용이다. 같은 달 5일 ‘공정경제 성과 조기 창출 방안’에 담겨 경영계와 마찰을 빚고 있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지주회사의 손자회사 출자 금지)과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연기금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경영참여 가능성 확대) 등도 모두 관련 법안들의 국회 논의가 표류하는 상황에서 나온 것들이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도 "아무리 좋은 정책이 있어도 회의가 열려야 말을 하는데 회의를 여느니 마느니부터 싸우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비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각각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과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추경호 한국당 의원은 “내가 경험한 한도 내에서는 청와대와 여당에서 입법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를 구한 일이 거의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주요 정책이 시행령에 의존할수록 상위법과 모순되거나 법률상 근거가 없는 시행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국회가 행정입법을 통제해야 한다는 법안마저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야당 시절 행정입법 통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던 민주당도 여당이 되더니 모른 척해서다. 이례적으로 정세균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5월 국회의장으로서 시행령이 법률 취지와 맞지 않을 경우 검토보고서를 본회의에서 의결해 정부로부터 책임있는 답변을 받아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냈지만 지금껏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김태년·김철민·송옥주·박완주 민주당 의원도 야당 시절인 2016~2017년 유사한 법안을 냈지만 지금은 관심 밖이다. 정 전 의장은 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국회가 행정부를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정책을 주도하는 권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낸 법안”이라며 “여야가 바뀐다고 국회의 역할과 의무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뀌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국회가 시행령 통제 권한을 확보할 뻔한 일이 있긴 했다. 2015년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개정 논란 때였다. 그해 5월 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시행령 등 행정입법에 대해 국회가 수정권한을 갖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여당에 요구했다.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합의를 받아내는 대신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수용해 이 법안은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 의원을 향해 “배신의 정치”라고 하며 거부권을 행사하자 국회는 주저앉았다.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대국민 담화에서 “법률을 무시하고 시행령으로 대통령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은 행정 독재적 발상”이라고 말했었다.
현재 국회가 행정입법을 견제할 수단은 사실상 없다. 현행 시행령이 법률이 정한 내용을 넘어서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수정을 요구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우려가 있다’는 검토보고서를 부처에 전달하는 수준이다. 이마저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 20대 국회가 행정부에 검토 보고서를 보낸 경우는 단 2건뿐이다.
그 사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시행령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는 이어지고 있다. 자율형사립고 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정부가 2017년 12월 자사고 폐지 정책을 추진하며 자사고와 일반고 중복 지원을 금지토록 시행령을 개정하자 최명재 민족사관학원(민족사관고) 이사장 등 9명은 다음해 2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결국 이를 위헌으로 결정했다. 그 사이 고교 입시의 불확실성이 계속됐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잘못된 시행령에 따른 행정처분이 내려지고 그로 인한 피해가 소송으로 구제된 뒤 다시 원인이 제거되는 데까지는 최소 수년이 걸린다"며 "그 자체가 극심한 피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상·하원이 합동으로 불승인 의결을 하면 행정입법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권한을 의회에 주고 있다. 독일은 행정입법 제정 전에 국회에서 청문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제도가 있다.
임장혁·한영익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툭하면 파행, 사상 최악 20대 국회
법안이 법률로 된 경우 28% 불과
민주당, 야당 때 시행령 견제 추진
행정입법 통제 법안은 계속 표류
더불어민주당의 스타급 초선인 표창원 의원이 지난달 불출마를 선언하며 남긴 말이다. 모든 것에 부동의하는 여야도 ‘20대 국회가 최악’이라는 말엔 동의한다. 이는 법안 실적으로도 드러난다. 20대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는 지난달 31일까지 2만2656건으로 역대 최다지만 본회의에서 처리된 법안(내용 반영 포함)은 6232건에 불과해 법률 반영률이 27.5%에 불과했다. 이 비율은 16대(63%)국회부터 꾸준히 추락해 왔지만 19대(41.7%)에 비교해 20대 국회의 낙폭은 컸다.
‘소방관 국가직’ 법안 상임위 통과 823일
실제로 국회의 입법 지체는 심각한 수준이다. 823일.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던 ‘소방관 국가직화’ 관련 6개 법안이 지난달 2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민주당 이재정 의원 안은 문 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2016년 7월 21일에 나왔지만 선거제와 검찰개혁과 관련한 패스트트랙 정국의 파행이 영향을 미치면서 상임위 논의가 안 됐기 때문이다. 그 사이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2017년 2월 21일), 밀양 세종병원 화재(2018년 1월 26일), 고성 산불(지난 4월 5일) 등 대형 화재가 계속됐지만 한국당 의원들은 “국가직이 아니면 불을 못 끄냐”(이진복 의원)고 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도 "아무리 좋은 정책이 있어도 회의가 열려야 말을 하는데 회의를 여느니 마느니부터 싸우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비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각각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과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추경호 한국당 의원은 “내가 경험한 한도 내에서는 청와대와 여당에서 입법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를 구한 일이 거의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주요 정책이 시행령에 의존할수록 상위법과 모순되거나 법률상 근거가 없는 시행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국회가 행정입법을 통제해야 한다는 법안마저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야당 시절 행정입법 통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던 민주당도 여당이 되더니 모른 척해서다. 이례적으로 정세균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5월 국회의장으로서 시행령이 법률 취지와 맞지 않을 경우 검토보고서를 본회의에서 의결해 정부로부터 책임있는 답변을 받아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냈지만 지금껏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김태년·김철민·송옥주·박완주 민주당 의원도 야당 시절인 2016~2017년 유사한 법안을 냈지만 지금은 관심 밖이다. 정 전 의장은 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국회가 행정부를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정책을 주도하는 권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낸 법안”이라며 “여야가 바뀐다고 국회의 역할과 의무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뀌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독일선 국회에 행정입법 청문 절차
현재 국회가 행정입법을 견제할 수단은 사실상 없다. 현행 시행령이 법률이 정한 내용을 넘어서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수정을 요구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우려가 있다’는 검토보고서를 부처에 전달하는 수준이다. 이마저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 20대 국회가 행정부에 검토 보고서를 보낸 경우는 단 2건뿐이다.
미국은 상·하원이 합동으로 불승인 의결을 하면 행정입법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권한을 의회에 주고 있다. 독일은 행정입법 제정 전에 국회에서 청문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제도가 있다.
임장혁·한영익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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